이스라엘이 묻는다: 지금 전쟁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근 미국발 뉴스에서는 이스라엘이 무기 부족 상태에 처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이스라엘 군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며 무기고는 충분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민간 차원의 방어 태세를 완화하고 있다. 30인 이하 모임을 허용하고, 방공호가 있는 소규모 사업장의 영업을 재개하는 등 규제를 낮추는 모습은, 이란의 공격 능력을 일정 수준 평가절하하고 있는 방증이다. 동시에 국민 생활을 무기한 중단시킬 수 없다는 현실적 고려도 함께 작용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는 현재 상황에서 강경한 대응 전략에 힘이 실릴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치 구조상 총리 혼자 모든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10월 7일 하마스 사태 이후 이스라엘 사회는 강경 노선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 배경에는 가자 지구 철수와 두 국가 해법 실험의 결과에 대한 회의가 있다. 당시 유일하게 가자 지구 철수에 반대한 정치인이 네타냐후였다는 점은 지금 그가 말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더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단순한 적국으로 보지 않는다. 카다피나 후세인과 달리, 이란은 종교 이데올로기에 뿌리를 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과거 시리아의 핵 시설을 가동 전 선제타격한 경험이 있고, ‘우리의 안보를 미국이 우리만큼 절박하게 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해외 언론은 이렇게 묻는다: “왜 지금 이란을 공격했는가?” 하지만 더 본질적인 질문은 “이스라엘은 왜 지금까지 기다렸는가?”이다.

이스라엘의 목표는 평화협상이다. 그러나 이 평화는 단순히 협상의 형식에 있지 않다. 누구와 협상할 것인가, 그 협상에 진정성이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이스라엘의 안보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협상은 언제나 전장에서의 위치와 직결된다.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미국이 휴전을 조율하는 동안 가능한 많은 전략적 타격을 가해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해왔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이 와중에 미국은 ‘항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란 정권과 국민 모두를 자극하는 표현이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이 단어 선택이 전략적으로 현명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이란 사회의 자존심과 문화적 복합성을 이해하는 이들이라면 결코 사용하지 않았을 단어였다. 이스라엘은 외교적 정당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다. 전쟁조차도 외교와 정당성의 연장선 위에서 치러진다.

전쟁의 열쇠는 이스라엘이 쥐고 있다. 전쟁을 끝낼지, 더 나아갈지 결정하는 주체는 미국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에서 지금 던지고 있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미국이 참전하지 않는다면, 포르도(이란의 핵시설)를 그대로 둔 채 전쟁을 끝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은 단순한 군사 전략이 아니라, 이 전쟁의 존재 이유 자체를 되묻게 만든다.

이스라엘은 지금 고민하고 있다. 이 전쟁이 끝난 뒤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이 전쟁이 진정한 평화로 이어질 수 있는가? 만약 지금 강한 자가 되어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면, 그 협상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안보와 명분을 모두 확보하는 결정적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의 출발점은, 지금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한 정직한 물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